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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sleepiggy 2017. 8. 18. 00:22

수많은 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 왜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느낄만했다. 

낭만을 품고 사는 자라면 인생의 바이블로 삼을 만할 정도의 책인것 같다. 

현재를 살라. 이상과 철학이 아닌 현실을 살라. 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발산해 내는 조르바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감상을 쓰기에는 나의 표현이 아직 부족하다. 고전의 위대함이 여실히 나타나는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조르바의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있는 풍부한 묘사와 가치관의 서술은 감탄스러웠다. 

어떤 풍경을 보고 그 풍경을 글로 그려내는 일은 정말로 창의적이고 대단한 일이다. 이 책의 감상 하나 적기 힘든 인간으로서 찰나의 풍경과 그때의 감정을 묘사하고, 그것이 내게 느껴지는 경험은 경이롭다. 

게다가 이 것을 옮긴 번역가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옮긴이를 보니 '이윤기' 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로 알고있던 사람이였는데, 이렇게 또 다른 그리스 문학에 이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비로소 그의 그리스로마 신화가 보고싶어졌다.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찢긴 구름은 천천히 대지 위를 달리며 그림자를 대지 위에 부드럽게 드리우고 있었다. 또 한 떼의 구름이 하늘 저쪽에서 일어났다. 태양이 구름 뒤로 들어갔다 나옴에 따라 대지의 표정은 살아 있는 얼굴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했다. - p.39

눈에 보이는 듯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 두목 말씀이 옳은지도 모르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현명한 솔로몬 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봅시다,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대답을 못 하시나?"

나는 조용히 있었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로 이끌 수도 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먼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 p.53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저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 내가 선택한 길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내 모든 감각을 완벽히 단련함으로써, 또한 온몸도 그렇게 함으로써 몸이 즐기고 몸이 이해하게 하리라. 달리기를 배우고, 씨름을 배우고, 수영을, 승마를, 조정을, 운전과 사격을 배우리라. 내 영혼을 육신으로 채우리라. 내 육신을 영혼우로 채우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저 영원한 두 적대자가 내 안에서 화해하게 만들리라. -p.113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p. 121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순간의 감정상태와 그 때의 조건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마을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닭과 돼지와 나귀가 우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뛰어 일어나며, 조르바! 오늘은 할 일이 있잖아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나 자신도 햇살이 장밋빛으로 들어오는 아침에 가만히 몸을 일으키는 행복감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기적 같은 순간이 오면 인생의 모든 것은 아침처럼 산뜻해 보이는 법. 대지는 부드럽고 구름은 바람에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어 갔다. -p.67

가끔 아침에 일어날 때 더없이 충만한 행복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방이 조용하고 해는 꽤나 떴지만 덥거나 춥지 않고,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데 몸도 더할 나위없이 가벼울 때. 그때 생각한다. 인생의 모든것은 이 날 처럼 행복하고 산뜻하지만 내가 그것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했던 것 은 아닐까 하고. 그때가 생각나면서 이 문장이 인상깊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p.152

화자의 생각은 나의 자화상을 보는듯했다. 안전을 핑계삼아 현실이 아니라 머릿속에서만 그리는 용기없는 모습이 떠올랐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쪾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가슴속에서 인생이 마지막 기적을 완성했다는 것, 곧 인생이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다는 것." -p.178


나는 한동안 화살에 꿰뚫린 하트가 그려진, 향긋한 편지를 쥔 채, 그와 함께 보냈던,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찼던 나날들을 생각했다. 조르바와 함께하는 동안의 시간은 다른 맛이 났다. 시간은 더 이상 외부 사건의 산술적인 연속도, 내부의 풀지 못할 철학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시간은 결이 고운, 따뜻한 모래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모래를 감촉할 수 있었다. -p.231

추억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


갑갑했다. 나무에 물이 오르는 찌무룩한 나날에 나도 봄 병을 앓고 있었다. 왠지 나른하고, 가슴에는 뭔가 벅차오르고, 온몸은 스멀거리고, 어떤 크지만 단순한 행복의 갈망이 - 혹은 기억이 -나를 사로잡았다. -p.247

봄이면 일렁이는 마음에 대한 탁월한 묘사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p.332 


p.364

과부의 죽음에 대해 그 순간의 분노한 감정상태와 잠시 뒤 그것을 합리화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마저 잊어버리고 마는 순간이 잘 묘사되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였다. 



"조르바, 가엾은 부불리나 여사를 잘도 잊어버리셨군요."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 싶을 정도로 나는 그를 몰아세웠다.

조르바는 골이 났는지 목청을 돋우었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p.297

조르바의 인생상이 잘 집약된 부분이다. 최근에 하루동안 하지 못한 일들에 끙끙대며 잠에 잘 들지 못했었는데, 이 구절을 읽고는 아차 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긴 시간의 단위에서 아주 일부의 일에 대한 것이였고, 그 순간 나는 뒤를 돌아보며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 - 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외적으로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외적인 재앙이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

나는 해변을 따라 잰걸음으로 걸으며 저 보이지 않는 적과 대화를 했다. 나는 호령했다.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는다니, 어림없는 수작!"

-p.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