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Book

낭만적 연애의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sleepiggy 2017. 2. 28. 00:15

사랑에 있어서 알랭 드 보통의 글을 항상 탁월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는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낭만적 연애의 그 후의 일상> 은 사랑 이후에 오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런 점에서  <The Course of Love> 라는 원제에 대한 한국어 제목은 퍽 잘 어울린다. 이 책을 정확히 집약한 제목이리라. 


이번이 두번째 완독이였다.

책을 읽다가 깊이 공감되거나 감명 깊은 부분을 만나면 밑줄을 긋거나 책을 접는 식으로 독서를 하는데 이 책은 온통 접히어 있어 책을 들여다보면 웃음이 난다. 그 만큼 보통은 연애의 모든 순간에 대해 엄청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못나고 부끄러워서 차마 남에게 말할 수 없던 부분들을 남자 주인공의 속마음을 빌어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못난 모습을 읽게되면 미성숙한 유치함에 피식피식 웃으면서 책을 읽었다.



공감의 포인트는 그런 귀여운 미숙함 만이 아니다. 사랑이 시들어 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할퀴고 물어뜯는 에피소드들. 이런 곳에서 공감을 느끼게 되면 독자로 하여금 그 행동의 대상이였던 사람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후회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실제로 주위의 지인들은 쉽사리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도 했고,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책을 더 읽을 수 없겠다고 읽기를 포기해 버린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복잡미묘한 인간 감정에 대한 공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만일 여기서 그쳤다면 가벼운 소설책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그 원인과 올바른 방향이였을 반응에 대해 얘기해 준다.(물론 그러지 못하겠지만, 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항상 뒤에 붙이는 것도 좋아한다. 어떤 사람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독자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책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책은 남자주인공의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지만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려고 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 내용을 보더라도 남자는 책 초반과 후반부에서 성숙도가 다르다. 물론, 나는 여자인지라 그 과정에서의 여자의 희생이 안타깝다. 여자주인공에 몰입해서 인지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 비해 미숙한 사람인것 같고, 그 과정에서 이미 성숙한 여자가 그것을 다 받아주는 것이 씁쓸하면서도 저것이 사랑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대한 보통의 생각에는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기술이라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인 <사랑의 기술> 에서 에리히 프롬도 같은 말을 한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고 자연스럽게 얻어 지는 그런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정제하고 연마하는 것이라고. 그런 면에서 마지막장의 심리상담 치료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한것은 감탄이 나올만하다.



또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이러저러한 감정과 현실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해피엔딩인거다. 아주 현실적이지만 해피엔딩. 내가 좋아하는 구성이다. 



물론 책내용의 모든 부분이 좋지는 않았다. 사랑에 있어서 낭만주의자와 뜻을 같이 하는 성향인지라 외도편에서의 라비의 행동은 면죄부를 주기 힘들었다. 성숙으로 가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봐주기엔 너무 어리석었다. 그리고 성공적인 결혼생활과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양립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는 꽤나 쓰라렸고 반발심이 생겼다. 아직 결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꿈꾸고 있던 낭만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합의에 대한 꿈을 좌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안정적인 결혼생활과 개인의 자아를 유지하는 일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책 한권이 나로부터 아주 많은 감정들이 끄집어 내게 만들었다. 설레어 보기도 하고, 짜증나게 만들기도 하고, 한심한 마음에 갑갑한 마음까지 들게 하더니 라비의 한마디로 끝내 속이 뒤집어졌지만 결국엔 벅찬 감동까지 주는 책이였다. 1부 부터 5부까지 사랑의 전 과정이 잘 담겨있는 책이였다. 사랑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