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Book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 - 에리히 프롬

sleepiggy 2017. 1. 29. 18:57

최근에 느낀 무기력증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선택한 책이다.


책 초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조금 다르기도 하고 약간의 텀을 두고 읽어 두 파트로 나누어 적었다.


Part 1.

초반에는 개인의 자아를 강조하며, 타인의 자아에 대한 완전한 존중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개인의 자아가 실현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인은 자신의 자아를 찾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고 한다.


보통 우리가 


~을 원한다.

~라고 생각한다.

~하게 느낀다.


와 같이 소망, 생각, 느낌이 정말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맞는지, 주입된 것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한다.

가령 나는 살을 빼기를 원한다. 는 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나는 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는게 정말 맛있어서 그런건지 주위에서 맛있다고 해서 그런 것인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고 목표 하는 것들이 정말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 목표 한 이후에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키는 것인지 묻는다.



또한, 우리는 어릴적부터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저 사람은 나쁜사람이다.' 라는 적대감을 상실하게 되고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마침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자발성의 전제 조건은 인격을 전체로 받아들이고 '이성' 과 '본성'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 p.78


"자발적 행동은 자아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고독의 공포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기적 성장은 타인의 자아가 가진 특수성을 자신의 자아가 가진 특수성 못지않게 최대로 존중해야만 가능하다." p.85


"중요한 것은 활동 그 자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무게중심이 정확히 거꾸로 되어있다. 우리는 구체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한다." p.83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 p.83



"자신에 대한 환상은 지팡이와 같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온전하게 완성할수록, 다시 말해 '자신을 잘 꿰뚫어 볼수록' 더 강해진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인간의 힘과 행복을 목표로 하는 기본 계명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에리히 프롬의 책은 특정 대표 문단을 뽑아서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다. 책 한 권 모두가 중요한 문장들로 엮여 있다. 그래서 대표 문단으로 그 책의 감상을 다시 떠올려보기 보다 차라리 다시 한번 읽길 바라는 마음이다.





Part 2.


06장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무력감을 정신증이 빗대어 표현하는데, 그 무기력함 이라는 현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분석과 예시들이 매우 날카로웠다. (6장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챕터였다. )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에게 인정(사랑, 존경) 받을 만한 조건을 갖고있는지에만 몰두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 능력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과대망상과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을 느끼는 상태를 오가는 삶을 산다. 




또한 무기력한 사람들은 어떤 비난,비판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들의 말이 진심으로 맞다고 공감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뜨끔 했는데, 나는 이것을 오픈 마인드로 착각을 하고 살았던 듯 하다. 사실 오픈마인드 라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이게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해 왔었는데(사회생활에서 무조건적인 수용과 오픈마인드는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이것이 무기력증의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글을 보고는 가려운곳이 긁혀진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특출난 엘리트가 되는 사람들은 좀 더 까다롭게 요구하고 인정머리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어릴 적 배운 "착한사람이 돼라" 는 임무와 좀 더 높은 위치에 가고 싶다는 현실적인 욕구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동안. p.177)




무력감을 호소 하는 사람 들은 그런 상황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를 한다.


신체적 결함, 과거에 겪은 큰 상처, 최악의 경우는 상상하던 문제를 실제로 실현시켜 이 상황에서 나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는 가학적 위안으로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무력감의 정도가 보다 덜한 경우에는 위로의 차원에서의 합리화가 진행된다.

기적에 대한 위안, 시간에 대한 위안으로 무력감을 합리화 한다. 

누군가 나타나거나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서 이 무력감이 해소 될 것이라는, 혹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이 무기력을 깨고 나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이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경우 일정한 연령 -40 대 초반- 에 이르게 되면, 각성하여 상상을 포기하고 자력을 활용하여 노력하는 부류와 시간의 착각없이 견딜 수 없기에 신경증으로 무너지는 부류가 있다고 했는데, 이때 뜨끔했다. 지금 내 나이가 29인데, 40대 초반까지 막연한 합리화로 내 시간을 낭비한 후에 신경증적 인간으로 변하는 내 자신을 상상해 버렸기 때문이다. 혹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각성하였다고 해도 40대 초반이면 이미 꽤나 늦은 시기일 것 같기 때문에.)




이러한 무력감의 현상들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행하는 방어적 행동으로 과보상행동과 은폐목적의 합리화를 든다. 

과보상의 가장 흔한 경우는 분주함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오히려 과하게 활기차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언가를 하면서 자신의 무기력을 은폐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보통 핵심적인 것이 아니라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이다. 이를 '가짜 활력' 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직장상사나 어떤 권위자 심지어는 국가에 대해 내가 ~였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탐닉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만나는 사람 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내가 더 잘날수 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하며, 그 상상에 실패하면 그 화의 화살이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무력감의 일부 원인은 어린시절의 경험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고도 말한다.

아이를 어른과 동등한 입장에서 독자적인 의견과 인성을 가진 존재로 대해주지 않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 원인이다. 또한 아이를 너무 떠받들어 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포로로 잡힌 왕자에 비유하였다.) 이 부분에서 육아의 방법에 대한 통찰을 조금 얻었다. 



읽으면서 꽤나 많은 부분에 공감했고, 뜨끔했으며, 반성했는데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래서 해결책은?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였다.


그 답은 현실에 통찰과 적극적 행동 이다.

통찰이라는 것은 마냥 '나는 안해서 안되는거야. 내가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은 잘 될거야.' 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적극적 행동 이라 함은 아래 세 가지를 포함한다.


1.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을 새롭게 보고 감탄하는 능력 

2. 집중력 

3. 갈등과 긴장을 받아 들이는 능력



현대에는 동시에 많은 일을 하면서 제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만연하다. 불안감을 떨치고 오롯이 한가지에 집중하면 그 순간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고,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갈등을 항상 피하라고 교육 받았지만, 그 갈등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심오하게 경험하며 이성뿐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수용해야 한다. (p.200)


갈등 만큼 우리는 양극화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부분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성의 양극화에 대해 우리는 성평등으로 그 불안감을 해소 하고 있는데, '평등' 이라는 잣대를 잘못 적용함으로서 성적인 매력과 열정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우주적 양극성을 유지한 채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 하여야 하는 상태여야 하는데, 그것이 동일성을 지향하는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사랑이 훌륭한 동지애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반성..과 에리히 프롬이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의 우주적 양극성이 어떤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여성과 남성은 왜 서로 투쟁하는가"를 읽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



에리히 프롬은 변화에 대해 관대한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자아실현은 내 안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나의 자아를 확립하고 변함없이 흔들리는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나의 주관을 가지되 사회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자아가 발전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건, 어떤 글을 읽건, 산책을 하건, 이 모든 일을 집중해서 한다면 나에게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p.194)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으면 얻게 되는 통찰이 너무 많아 머리에 모두 새기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한번에 완독 하는 것은 내게 너무 버겁고 챕터 별로 천천히 음미하고 새기면서 읽는게 좋은 것 같다. "소유냐 존재냐" 도 읽어보고 싶다. 다 읽고 나니 진이 빠지누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