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Book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sleepiggy 2017. 6. 27. 05:33

요즘 화제작이다.


주위에 책에 조금 관심이 있거나 성 감수성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는 지인이라면 모두가 한번쯤은 읽고 있더라. 쉽게 읽히고, 한번 읽고 다시 볼 것 같지 않은 소설책은 잘 안 사는 편인데, 누군가는 펑펑 울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보는 내내 너무 우울했다고 하여 궁금한 마음에 나도 한번 사서 읽어보았다.


해외여행 하는 비행기 안에서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술술 읽힌다.  글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한번 더 생각할 필요가 없이 눈으로 읽자마자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내용이라 더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너무 슬프거나 너무 우울하지는 않았다. 

알고있는 사실 그대로 였고, 그냥 그 사실에 적혀있을 따름이였다. 씁쓸하긴 하지만 현실이고, 이 현실에 대한 개선은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과연 내가 어떻게 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인가? 그들의 인식이 바뀔 것인가? 이 글의 마지막에 의사가 이야기 하듯, 그는 "김지영" 이라는 여자의 일생을 들으면서 그녀를 딱하게 여기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여자에 대한 이해로 확대 되지 않는다. 한발자국 떨어져 있는 '제3자' 로서의 남자는 여자에게 관대하지만, 여자와 얽힐 일이있는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순간 깊숙이 깔려있던 여성이 대한 불합리적인 생각들이 고개를 쳐든다. 회식자리에서의 매너없던 팀장이 본인의 딸은 지극히 아꼈듯이.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환경에서 여자로서의 포지션에 대해서 자꾸 혼란 스러웠다. 김은실 팀장처럼 여자로서 누리게 되는 모든 복지를 포기하면서 남자와 동등하게 평가 받는게 맞는 걸까? 사회로 부터 얻은 부당한 시선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작은것들 마저 모두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필요할 때만 취하면 되는 것일까?


의외의 포인트에서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있는데, 김지영씨가 육아로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잠시 숨을 돌리고 바깥에서 커피 먹을 시간이 생겨 집 근처 공원에서 유모차에 잠든 아이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그때 옆 벤치에 앉아있던 직장인 무리들이 그녀를 가리키며 "나도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 라는 대화들을 하는 장면이다. 순간의 장면으로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나도 가끔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판단들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면에 있는 모습들이 순간의 모습보다 더 큰것인데. unseen is more than seen.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걸까. 

의사는 모니터에 뜬 김지영 씨의 이전 치료 기록들을 훑어본 후,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 고 난이도를 후려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149)